한양국악사가 제작하는
교육용 플라스틱 관악기 피리사 소개

소개

피리사는 1980년대, 단소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故박종진 옹의 ‘피리사’ 라는 간판이 붙은 낡고 허름한 집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국악 한다는 사람치고 아마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오“ 라고 인터뷰하신 내용도 있습니다.


박종진 옹은 30년넘게 관악기를 만들면서 전통악기 대중화의 길을 열어오시고, 쌍골대가 구하기 어려워 대중들이 대금을 쉽게 접할수 없는 것이 아쉬워 노력을 대금을 대량으로 만들어낼수 있는 기계를 개발, 플라스틱으로 된 산조대금과 정악대금을 처음으로 만들어내 당시 국립국악원에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음정이 정확한 악기를 만들기 위해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전수 장학생이던 지금의 송부 억쇠 대표를 만났고 송부 억쇠 대표는 대금을 비롯해 중금과 소금까지 제작하는 솜씨도 뛰어나며, 자신이 평생 동안 몸담아온 국내 국악계 발전에 있어서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는 인물, 목전의 이익에만 연연하는 차원을 떠나 미래의 국악인을 양성하는데 다소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국악기를 아무 조건 없이 기증하는 등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런 두 사람의 국악계의 발전을 위한 같은 마음과, 같은 정신이 통하여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더 정확하고 품질이 좋은 피리 사라는 이름을 가진 대금과 소금 그리고 단소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생전에 박종진 옹께서 이루고 싶었던 꿈인, 악기에 무형문화재를 새기는 것 또한 이루었습니다.


그즈음 전통문화 열기를 타고 젊은 층이 국악기를 사 가고 국악 팬이 많이 늘어나게 되면서 점점 더 피리사 플라스틱 관악기가 더 많이 알려지며 많은 선생님들에게도 입소문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박종진 옹께서 타계하신 후 송복 쇠 대표가 그 정신과 이름을 이어받아 피리사 플라스틱 악기를 많은 학교나 단체에 기증하고 널리 알리며 한양 국악사 설립 후 직접 사출하여 여러 음악교수님들 선생님들과 품평회를 하면서 논의한 점을 제품에 적용하고, 열심히 업그레이드하며 비싼 쌍골죽 대금이나 소금보다 접하기 쉬운 플라스틱, 악기의 장점을 살려 현재까지 독보적인 교육용 악기가 되었습니다. 품질과 가격을 떨어뜨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한양 국악사·피리사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